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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도 화환도 사라진 국회…세월호가 바꾼 풍경

혹여 책 잡힐라 조심 또 조심…행사 줄줄이 취소 '여의도 올스톱'

(서울=뉴스1) 김영신 기자 | 2014-04-23 05:29 송고 | 2014-04-23 06:08 최종수정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정치일정이 사실상 멈춘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게시판에 출판기념회와 심포지엄 등 각종 행사의 연기를 알리는 문구가 붙어있다.2014.4.22/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오늘 토론회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하겠습니다."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 정책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나라 전체가 슬픔에 잠긴 가운데 열리는 행사인 만큼 요란을 떨지 않고 엄숙히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평소 이런 국회 행사 때마다 행사장 앞을 빼곡히 채우던 정부 부처·기관, 기업들의 축하화환도 이날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실이 사전에 각 부처와 기관 등에 "축하화환을 절대 보내지 말아달라"는 공문을 보내고 수차례 확인했기 때문이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가가 애도에 빠지면서 국회에서 열리는 각종 출판 기념회나 토론회 등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는 가운데 열린 행사인 탓에 혹시나 눈총을 살까 조심 또 조심하는 모습이다.

행사에서 빠지지 않던 당 지도부의 축사도 이날 토론회에선 생략됐다. 강길부 기획재정위원장만이 짧막히 축하인사를 했다.

주최자인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 역시 인사말에서 "여객선 침몰 사고로 고통 속에 계신 여러분들을 위로한다"면서 "세미나를 연기할까도 거론됐으나 조용히 여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엄숙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참석자 소개 도중 객석 일부에서 박수가 흘러나오자 박 의원은 "오늘 박수는 생략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현안 보고가 열린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도 의원들은 정부를 상대로 한 질의를 최소화하며 평소보다 발언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처럼 세월호 침몰 사고는 국회 풍경을 확 바꾸어 놓았다. 화환도 박수도 없는 국회의원 행사는 사고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여야 의원들 간 공방의 장이었던 상임위 회의장이 이날처럼 조용한 일도 이례적이다.

이날 토론회는 정책 학술 세미나였기에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의원들의 출판기념회나 친목 모임 등 취소사태가 줄을 잇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이끄는 새누리당 통일경제교실은 전날(22일) 강연을 취소했다. 호화로운 행사는 아니지만 혹여라도 세월호 사고의 불똥이 튀어 오해를 살 소지를 아예 차단하기 위해서다.

새누리당 손인춘·이노근·이완영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김광진 의원 등도 이번주 열기로 한 토론회나 공청회를 모두 연기했다.

호화로운 행사의 대명사로 꼽히는 출판기념회는 말할 것도 없다.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각각 출판기념회를 취소, 무기한 연기했다.

전날 열렸던 한반도 생태통일포럼 행사 역시 관계 기관들의 화환은 사절했고, 예정됐던 테이프 커팅식도 생략했다.

국회의원들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텅 비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아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의 세월호 사고 관련 SNS 글로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국회의원들이 SNS 자체를 끊어버린 것이다.

평소 SNS를 활발히 이용하며 이슈 때마다 의견을 개진했던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 정청래 새정치연합 의원 등의 계정에는 요즘 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의원들의 '식사정치'도 가뭄의 콩 나듯 적어졌다. 이미 여야에 '음주·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가운데,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여럿이 모이는 식사자리 자체도 애도 분위기에 역행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줄줄이 취소하는 것이다.

의원들은 의원실 보좌진들에게도 술자리, 골프 등을 금지시키고 언행을 각별히 조심하라는 주의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이로인해 점심·저녁이면 국회의원들은 물론 보좌진, 국회 출입 관계자들로 붐비던 여의도 식당가도 세월호 사고 직후 찾는 발길이 뜸해졌다.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서 "지금은 숨만 쉬며 일만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로 다들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정치권발 돌발 논란이 자꾸 나오고 있지 않느냐"면서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조심 또 조심하는 것만이 지금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eriwha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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